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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월드/철학-교훈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헤겔]과 마주치게 된다.

by 인생을 책으로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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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0년 동안 마르크스에서 데리다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철학에서 나타난 거의 모든 사상의 조류는 "헤겔의 체계"라는 도전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헤겔의 영향도 철학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었으며,

정치사상은 물론 전 세계 정치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되었죠.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헤겔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의 출발점으로 상기되고

있는 헤겔이라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요?

 


 

프로이센의 철학자 "헤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풀네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생애년도: 1770년 8월 27일 ~ 1831년 11월 14일

 

직업: 철학자, 대학 교수, 철학사, 학자, 작가, 법철학자, 논리학자

학파: 독일의 이상주의, 유사주의, 헤겔주의

 

 

 


 

 

 

 

헤겔이라는 철학자는 프로이센의 철학자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칸트의 이념과 현실의 이원론을 극복하여

일원화하고, 정신이 변증법적 과정을 경우해서 자연, 역사, 사회, 국가 등의 현실이 되어 자기 발전을 해가는 체계를 종합 정리하였죠.

 

헤겔은 1770년에 태어났는데, 이년도에 태어난 인물들에는 프리드리히 횔덜린(헤겔 절친), 루트비히 판 베토벤, 월리엄 워즈워스가 있습니다.

 

 


 

1. 헤겔의 풋풋했던 학생 시절

:

1788년에 헤겔은 튀빙겐 대학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신학교에 들어가 루터교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이 때 헤겔은 다락방을 빌려 미래의 절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함께 지내게되죠.

 

이후 헤겔과 횔덜린 프리드리히 셸링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헤겔-횔덜린-셸링 (삼총사 트리오)

 

 


 

 

신학교 선생님들은 헤겔이 철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꼳았는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헤겔은 그리스에 대한 지식이 아주 넓고 깊었습니다.

 

(이 시기에 헤겔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이며

작가인 "장 자크 루소"를 즐겨 읽었습니다.)

 

 

 

 

 

2. 가정교사가 된 헤겔

:

1793년에 신학교를 졸업한 뒤 헤겔은 베른의

귀족 카를 프리드리히 슈타이거 폰 추크의 집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했습니다.

 

이 집에서 3년 동안 일곱 살짜리 아들 하나와 두 딸, 그리고 뇌샤텔에서 온 소년 하나를 가르쳤죠.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헤겔은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헤겔은 고전적인 정치경제학도 공부하기 시작해, 180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치경제학자들 -

 

제임스 스튜어트, 애덤 퍼거슨, 애덤 스미스정통했습니다.

 

헤겔의 초기 저작들은 헤겔이 근대의 자유 기업 제도와 시장경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시민사회'의 발전이 가져올 문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죠.

 

 

 

3. 헤겔과 기독교

:

헤겔이 완성한 첫 논문은 [예수의 삶]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것은 모두 제거되고, 예수가 꼭 대학교수이며 [순수이성비판]의 저자인 "이무누엘 칸트"처럼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가르침을 설파합니다.

 

헤겔은 곧바로 계속해서 [기독교의 실정성](1795)을 썼습니다.

 

이 글은 정말 급진적이며, 여기서 헤겔은 이미 그의 모든 사유의 중심에 있던 문제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판적이고 역동적이며 해방적이었던 충동들이 그와는 정반대로 변하는 경향)

 

이 글에서 헤겔은, 기독교가 권위주의적 특성을 지닌 데는 예수의 책임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까지 하죠.

 

헤겔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1799년)다시 이 주제로 돌아가지만, 강조점은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헤겔이 기독교를 이성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계몽주의의 아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변적인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는 기독교 신비주의자 같습니다.

 

 

4. 예나에 도착한 헤겔

:

1799년, 헤겔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약간의 유산을 헤겔에게 남기게 됩니다.

 

헤겔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으나,

따로 봉급을 받지 않고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보수를 받게 됩니다.

 

헤겔은 괴테와 셸링 같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았으면서도 예나를 떠나기 직전인 1807년까지도 대학에서 봉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죠.

 

 

 

5. 헤겔의 [정신현상학]

:

[정신현상학]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까지 씌어진 가장 이상한 책 가운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 책에는 헤겔이 그후 일생 동안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게 될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죠.

 

서문을 보게 되면

 

 

 

 

 

"내용과 관련해서는 특수한 개인도 일반 정신이 지나온 단계를 똑같이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형태는 일반 정신이 한때 지녔다가 버린 형태들을 오랫동안 다져서 평평해진 길을 걷듯이 거쳐가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지식에서 과거에는

성숙한 정신 능력을 지닌 인간의 정력을 요구했던 것이 이제는 아이들을 윟나 정보나 연습문제, 심지어는 오락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 보며,

 

이렇게 배워나가는 동안 우리는 세계 문화의 역사를 희미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정신현상학]은 14단계를 거쳐 감각적 확신에서

절대지에 오르게 되는데, 크게 의식, 이성, 정신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여기서 절대지는 "철학 자체"와 같은 것으로서,

아직 완전히 체계적인 형태로 펼쳐지지 않은 자신의 철학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의 철학은 조각난 채 흩어져 있던 인류의 기억을 모아 복원한 것이므로, 인류의 자기실현의 역사를 의미 있는 전체로 봄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파악하려는 인간의 고투이죠.

 

 

 

6. 헤겔의 출세

:

헤겔의 [논리학]이 출간되자마자 곧바도 인정을 받게됩니다.

 

베를린과 하이델베리크, 애를랑겐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제안받게되죠.

 

1816년 7월 30일에 하이델베르크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으며, 헤겔은 마침내 마흔 여섯에 나이네 하이델베르크에서 학자로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정식 교수 자리를 얻게됩니다.

 

교수가 된 그는 자신의 철학을 토대로 강의하기 위해 1817년 [철학대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이로써 헤겔의 철학은 체계적인 형태를 얻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되죠.

 

 

 

7. 헤겔 좌파와 우파, 중도파

 

:

헤겔이 죽음을 맞이한 뒤,

'청년 헤겔주의자들로'로 일컬어지는 헤겔의 추종자들은 곧 신학의 문제를 놓고 파가 나뉘게 됩니다.

 

 

우파: 전통적인 기독교 옹호 + 헤겔의 체계 가운데 자기들이 흡수할 수 있는 것만 약각

 

중도파: 종교의 교리를 헤겔의 용어로 재해석해 종교에 새로운, 좀더 과학적인 언어를 부여

 

좌파: 기독교 비판 + 헤겔의 사상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발전(무신론적이기까지 한)

 

※모제스 헤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등 = 좌파

 


 

이렇게 헤겔의 철학은 이후에도 마르크스와 같은 인물들의 영향으로도 계속 알려지게 되면서

 

철학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집니다.

 

그렇기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길 끝에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헤겔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얘기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헤겔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았는데요,

 

관심이 더 생기시는 분들은 꼭 헤겔의 저서들을 사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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