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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월드/철학-교훈

할렘의 어머니, 베티 박 여사님의 여정

by 인생을 책으로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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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과 멀리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트러블이 주요 원인이 되겠죠.

 

 

그리고 일을 하면서 고객들과 손님들, 직장 상사를 상대할 때에도

 

사람들과의 일에 이리저리 치일 때면

 

그들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를 기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간혹 생길 때, 저는 할렘가의 베티 박 여사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베티 박, 아메리칸드림을 품다

:

베티 박 여사님은 좋은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1974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125번가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현지 한인 상점에 대한 지역사회의 거부감과 보이콧 운동으로

 

사업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그 당시, 흑인들의 이러한 상권 운동 때문에

 

난다 긴다 하는 많은 상점들이 더 이상 번창하지 못하고

 

사업의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베티 박 여사님은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직원을 할렘가의 인물들, 흑인들을 고용함으로써

 

자신이 할렘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맘먹죠.

 

 

렇게 그녀는 이웃 사랑의 원칙을 기본으로 삼아

 

손님들을 단순히 고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친구처럼, 가족처럼

 

그들에게 깊은 애정과 정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할렘가에서 사업을 하면서

 

많은 금융적 손실과 실패들도 겪었지만

 

그는 이웃 사랑의 원칙과 특유의 리더십과 집요함으로

 

마침내 할렘가를 빛내주는 하나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녀는 할렘가의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소울 푸드를 만들며

 

매주 뷔페 음식을 바꾸면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했습니다.

 

 

 


 

베티 박 여사님으로부터 배우는 것

:

일단 저는 베티 박 여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비행기로만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지인 미국에 가서

 

여자 동양인으로 무법지대인 할렘가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반쯤 미쳐야 가능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 당시가 1900년 대 후반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죠.

 

할렘가에서는 하루에 3번 이상은 항상 총기 사고가 발생했고,

 

경찰차의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날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건장한 성인 남자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사업을 할 텐데

 

남들보다 비교적 힘이 약하고 언어도 잘되지 않는

 

동양인 여성이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었죠.

 

 

아니다 다를까, 예상했듯이 여사님은 강도에게 도둑질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으며, 그런 식으로 힘들게 번 돈을 다 날린 적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보통 사람들 같은 경우에

 

사업을 접거나, 아님 흑인들에게 적개심을 품기 마련인데

 

여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웃 사랑이라는 원칙하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매일 이어나가셨고,

 

마침내 그녀는 할렘가의 빠질 수 없는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죠.

 

 

이런 분들이 현세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보고 배워야 하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백날, 자기 계발 책들과 위인전들을 읽으며 뭐 하나요,

 

이런 분들처럼 밖에 나가 의로운 일들을 행하지 않으며

 

전혀 의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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